10년 이내에 사라질 직업에 대해 설문조사를 하면 10위 내에 반드시 들어있는 것이 번역가입니다. UN은 2016년, ‘미래보고서 2045’에서 2045년에 사라질 직업으로 번역가를 꼽았습니다.
실제로 파파고, 구글 번역의 수준은 매우 빠르게 좋아지고 있습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구글이나 네이버에서 번역을 하면 “단어를 그대로 직역”한 매우 이상한 문장이 나왔습니다. I want to drink water.라는 문장은 ‘나는 원한다 마신다 물’ 또는 조금 나은 경우라면 ‘나는 원한다 물 마시기’ 정도의 번역문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꽤 정확한 문장이 나오고, 심지어는 높임말로도 표시됩니다. 요즘은 파파고만 있으면 해외에서도 거의 대부분의 상황에는 대처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번역가는 언제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번역가가 되려면 일단 외국어를 “잘”해야 합니다. 자신이 번역하는 분야에 관해서는 외국어에 능통해야 합니다. 특허번역이나 의학번역을 한다면 일상회화는 조금 부족해도 번역에 필요한 단어는 완벽하게 알아야 합니다. 영화나 문학 번역을 한다면 오히려 전문 단어는 몰라도 되지만 일상 회화를 잘해야 합니다. 국제기구 문서나 외교문서라면 또 다른 능력이 필요합니다. 어떤 경우든지 번역을 잘하려면 일정 수준 이상의 시간과 노력, 그리고 돈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번역가의 현실은 어떨까요? 베스트셀러를 번역해서 인세만으로 몇 억씩 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A4 한 장에 만 원씩 받고 번역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나마도 월급쟁이가 아니라 수입은 매우 불규칙합니다. 현금흐름이 일정하지 않아서 미래 계획을 세우거나 대출을 받기에도 힘듭니다. 그나마 적은 번역비는 구글 번역이나 파파고의 등장으로 더욱 내려가고 있습니다. 단어당 0.5 달러를 주던 회사들이 단어당 0.3 달러만 준다고 하거나 기계번역을 고치는 검수 작업만 의뢰하기도 합니다.
번역가는 앞으로도 먹고 살 수 있는 직업일까요?
네! 번역가라는 직업은 계속 살아남을 겁니다. 대신 양극화는 심해질겁니다.
제가 번역을 한다고 말했을 때 어떤 지인은 “요즘 누가 번역을 사람한테 시키냐? 구글이나 파파고에 돌리면 되는데?”라고 말했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은 이렇게 생각할 겁니다. 원래부터 고학력 저임금 노동이었던 번역은 AI의 등장으로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안타깝게도 “사회의 고위직, 또는 피라미드의 꼭대기”를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무슨 소리냐고요?
AI의 등장으로 간단한 문장은 거의 완벽하게 번역을 할 수 있습니다. 간단한 일상회화, 여행회화도 문제없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구글 번역 파파고가 CEO 인사 말씀, 대통령 연례 교서, 민감한 의학 보고서, 극비 사항인 M&A 계약서를 번역할 수준일까요? 외국인 범죄자에 대한 판결문은 어떨까요? 박경리의 토지와 봉준호의 기생충을 맛깔나게 번역할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알고 있는 단어의 양은 AI가 인간보다 더 많지만 문장을 세련되게 만들고, 행간을 채우는 능력은 아직 인간에 미치지 못합니다. AI 시대임에도 여전히 인간 번역에 대한 수요는 남아있습니다. 저는 CEO 말씀, 민감한 내용을 담은 고위층의 편지, M&A 보고서 등을 번역한 적이 있습니다. 저의 지인은 이런 세계를 몰랐던 겁니다. 구글 번역과 파파고로 해결되는 텍스트만 아는 사람에게는 번역가가 곧 사라질 직업으로 보일 겁니다.
물론 AI 때문에 거의 대부분의 번역가는 어려움에 처할 겁니다. 말했듯이 기본적인 문장은 AI 번역으로 거의 다 할 수 있습니다. 기존에 간단한 문장이나 쉬운 텍스트(매뉴얼, 게임 명령어 등)를 번역했던 사람은 일거리가 없어지겠죠. 하지만 AI의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해 1) AI의 번역 결과를 검수하거나 2) AI를 학습시키기 위한 고급 문장을 만들어 낼 번역가에 대한 수요는 오히려 늘었습니다. 구글이나 파파고, 번역회사들은 기존에 있던 텍스트를 기반으로 AI를 학습시킵니다. 번역회사의 텍스트는 그나마 정제된 번역문이겠지만 구글이나 파파고는 우리가 포털에 입력하거나 블로그에 쓴 글로 학습합니다. 수준이 높은 글도 있지만 그보다는 비문으로 가득한 문장이 훨씬 많습니다! 따라서 좋은 문장을 가려내거나 만들어내는 수준 높은 번역가는 여전히 필요합니다!
같은 맥락으로 영화 번역가, 특히 문학 번역가에 대한 수요는 꽤 오랫동안 유지될 것입니다. 영화나 문학은 문장 그대로의 의미가 아닌 행간의 의미까지 해석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반어법 같은 것도 자주 쓰이니 그런 것도 상황에 맞게 해석해야 합니다. 하지만 아직 AI는 상황을 해석하지는 못합니다.
AI의 존재는 현존하는 거의 모든 직업의 존속을 위협합니다. 대부분의 직업이 사라지고, 수많은 종사자가 새로운 직업을 찾아야겠지요. 하지만 번역가 자체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고, 수준 높은 번역가는 더 많은 돈을 벌게 될 것입니다.
자세한 정보는 아래 글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 글은 2021년 4월 기준으로 제 경험을 바탕으로 썼습니다. 특정 상품이나 서비스를 판매 또는 추천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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