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가라고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나요? 아침 햇살을 받으며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고, 두꺼운 책을 뒤져가며 문장 하나하나를 아름답게 만들어 내는 모습? 평일에 서점에서 관련 서적을 찾아보고, 출판사 사람들과 미팅하는 모습? 게다가 “프리랜서”라고 하면 자기 맘대로 일을 조절할 수 있으니 거의 대부분 놀고, 조금만 일해도 우아하게 살 수 있다고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번역가도 있습니다만… 거의 대부분의 경우, 특히 기술번역(산업번역)을 한다면 평소 모습은 웹툰 작가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작업실이 없다면 거의 대부분 집에서 컴퓨터로 작업하기 때문에 실내복(또는 츄리닝)에, 민낯, 모니터를 오래 봐서 충혈된 눈, 마감을 재촉하는 메일과 전화, 터널 증후군에 시달리는 손목 등… 거의 대부분이 여유로운 생활보다는 일에 찌든 모습일 것입니다. 오히려 출근을 하는 사람보다 일에 더 찌들어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번역 일을 하면서 워라밸을 추구할 수 있나?라는 질문에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고 대답하고 싶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다음 그림을 보면서 설명하겠습니다.
번역을 하는 사람들을 크게 3개의 계층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A는 최상위 번역가입니다. 매우 뛰어난 실력을 갖고 있고, 업계에서 커리어도 인정받았습니다. 전문적인 내용으로 산업번역(기술번역)을 하는 사람 또는 특정 작가를 전담하는 문학 번역가 일 수 있습니다. 이들은 번역 단가도 무척 높고, 협상력이 있어서 일의 양을 조절할 수 있습니다.
B는 현재 활발하게 활동하는 거의 모든 번역가입니다. 실력이 있지만 업계를 평정할 정도는 아니고, 단가를 조금씩 올려가고 있지만 주변 직장인과 비슷하게 또는 덜 버는 수준입니다. 일을 골라서 받을 경지에 이르지는 못했고, 쏟아지는 일 때문에 늘 마감에 치여서 삽니다.
C는 번역 일을 처음 시작했거나 또는 번역 수준이 너무 낮아서, 업계에서 신용을 잃어서 “일이 거의 없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의 번역 단가는 매우 낮으며, 최저시급보다도 못 버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이 없기 때문에 강제로 쉬고 있습니다.
어느 업종이든 A그룹은 워라밸을 추구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돈도 많이 벌면서 시간도 마음대로 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단계까지 올라가는 데에는 시간과 노력이 듭니다. 번역을 잘 하는 것과 업계에서 인정받는 것이 별개이기 때문입니다. 도서 번역가는 이름이 남기 때문에 쉽게 명성을 얻을 수 있지만 산업 번역(기술번역)의 경우 번역을 아무리 잘해도, 번역 실적이 적으면 다른 회사에서 번역가의 존재를 알 수 없습니다. 꾸준히 이력서를 보내고, 번역 실적을 쌓아야 나의 존재를 알릴 수 있습니다. 어떤 회사에서 A급 번역가가 다른 회사에서는 초급 번역가로 취급되기도 합니다. 따라서 커리어를 쌓을 때까지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거의 대부분의 번역가가 B와 C그룹에 속합니다. C그룹은 일이 없기 때문에 늘 한가합니다. 그러면서도 늘 마음은 불안합니다. 실력이 없어서 또는 신뢰를 잃어서 업계에서 퇴출된 게 아니라면 경력을 좀 쌓아서 B가 될 수 있습니다.
B그룹은 제일 바쁩니다. 일단 B까지 왔으면 어떻게 해야 A로 가는지 그리고 잘못하면 C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늘 바쁩니다. 번역 일은 클라이언트의 일정에 맞추기 때문에 번역가에게 주어진 시간은 늘 촉박합니다. 늘 마감에 시달리고, 외국회사랑 일을 하게 되면 밤낮 없이 일해야 합니다. 프로즈에 보면 연락가능시간은 "24/7"이라고 표시해 놓은 걸 볼 수 있는데, "24시간 내내, 일주일 내내"라는 의미입니다. 즉, 출퇴근의 개념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항상 연락이 되는 사람이 아니면 일을 받기도 어렵습니다. 마감을 맞추기 위해서 밤샘은 기본이고, 자다가도 일어나서 메일에 답장을 해야 합니다. 모처럼 약속이 잡혀도 급한 일이 들어오면 일을 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한 달 내내 제대로 잠을 못 자고 일해도 겨우 300만 원 벌까 말까입니다. 번역가에 따라서는 통역을 같이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경우 스케줄 짜기가 더욱 어려워집니다.
B그룹은 마감을 지키지 못하거나 아파서 일을 잠깐 쉬면 금방 일이 없어집니다.
많은 사람들이 번역을 부업으로 해볼까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번역을 “부업처럼” 하려는 경우에도 처음에는 “전업처럼” 공격적으로 일해야 합니다. 번역가는 자기가 원하는 시간에 일을 하는 게 아니고, “일이 있을 때”에만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초보 번역가에게까지 번역 의뢰가 오는 것은 A, B 그룹이 모두 안된다고 했을 때입니다. 즉, 다들 하기 싫은 시간대의 어려운 일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을 해나가면서 커리어를 쌓아야 좋은 일을 편한 시간에 골라서 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워라밸은 C그룹처럼 강제로 쉬는 것이 아니라 A그룹처럼 시간과 돈의 여유를 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A그룹이 되기 위해서는 초기에는 어쩔 수 없이 최선을 다해 커리어를 쌓아야 합니다.
자세한 정보는 아래 글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 글은 2021년 3월 기준으로 제 경험을 바탕으로 썼습니다. 특정 상품이나 서비스를 판매 또는 추천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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